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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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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 지음 포이에마 2016년

책소개

“속지 마십시오, 깨어나십시오, 자라나십시오.
이제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의 진실이라는 것을 향해 성장해가야 합니다.“
혼돈과 현기증, 타성에 젖은 삶을 타격하는 망치 같은 글!
★★★김기석 목사, 정용섭 목사, 김용민 피디, 김재환 감독 추천!
《평신도를 깨운다》가 처음 나온 지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가? 꺼끌꺼끌한 목소리, 타들어가는 호흡으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력을 다해 던지는 광야의 물음. 뜨거운 애정과 날카로운 통찰, 직설적이면서도 진부함 없는 언어로 이 시대 교회와 신자들의 갱신과 갱생을 위한 길을 천착한다. ‘속지 마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떠나십시오’ ‘자라나십시오’. 사력을 다해 던지는 이 광야의 요청과 물음을 통과하지 않고서, 한국 교회는, 우리 신앙의 모습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다시, 평신도를 깨운다!
1984년 옥한흠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가 출간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판을 거듭하며 제자훈련의 교과서로 널리 쓰였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한국 교회는 정점을 찍고 이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 교회의 신자들은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그때 깨어난 평신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깨어나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깨어남이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할까?
《고뇌가 없다는 것》은 자유인교회 천정근 목사의 “사상의 가을이 내뿜는 마지막 매미 소리처럼 따가운 광야의 소리” 스물한 편을 담은 책이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목사로서는 다소 특이한 이력의 저자는 이미 단 한 권의 산문집 《연민이 없다는 것》을 통해 그의 공부의 치열함과 사유의 진정성으로 눈 밝은 독자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고뇌가 없다는 것》은 애초 “속(屬)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목회하는 자유인교회에서 연속한 설교를 모은 것인데, 그중 일부가 〈뉴스앤조이〉에 연재되는 동안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뜨거운 애정과 날카로운 통찰, 직설적이면서도 진부함 없는 언어로 이 시대 교회와 신자들의 갱신과 갱생을 위한 길을 천착한다.
물론 광야의 따가운 햇살과 먼지바람에 실려 오는 거친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는 극히 소수일 테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자는, 그 역시 메마른 현실에서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느끼는 자일 터인데, 그 꺼끌꺼끌한 목소리에 정신을 덮고 있던 수건을 걷어내게 된다.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의 고뇌
복음에 붙들린 사람이라면 오늘의 사회 상황과 교회 현실을 보며 아파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이 고통은 그가 목사냐 아니냐에 상관없다. 그것이 바로 그 자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사회 부정의와 한국 교회의 부패를 포함해 이 시대의 모든 것은 “취업이나 여행, 행운과 불행처럼” 동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서전’에 포함되는 내용이다(90쪽). 특히 저자는 “내가 배운 기독교적 구원의 신학과 조악한 반(反)기독교적 현실의 부조화 속에서 내 한계와 그 한계를 가지고 싸우는 한계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자신의 실존을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이란 비유를 통해 규정하기도 한다(11쪽). 누구든 자신을 구해주는 이에게 일체의 호의를 베풀겠다는 생각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자신을 구해주는 이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을 구해주는 그놈에게 모든 분풀이를 하리라는 마음으로 바뀌는 호리병 속 괴물의 인식상의 변화, 그리고 이를 통해 찾아오는 구원! 외부에서 오는 힘만을 바라는 무기력과 변질된 호혜적 사고의 틀을 깨는 ‘의식혁명’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실이라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은 대개 이와 같지 않을까?
"그 교회는 지금 무력하고 그 교회의 성도들은 힘이 없다. 무릇 하나님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들에게는 말씀하시지 않고,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 모든 극복의 과제를 떠맡기시는 것 같다"(7-8쪽).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자는 광야의 예언자들을 떠올리며, 그 광야의 사유를 꿈꾸며 쓰고 또 외쳤다. “시대의 혼돈과 현기증에 대한 고뇌"를 안은 독자라면 이 책의 목소리와 공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성실한 부정의 길
그렇다고 이 책이 사회 현실에 비판적 시각을 지닌 이들에게,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도에 그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 교회 현실을 짚는 책들이 대개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는 일에 집중하는 데 비해, 본서는 교인들의 의식구조와 인식상의 문제를 천착한다. 이 책이 파헤치는바, 회중에게 깊숙이 자리한 욕망과 콤플렉스, 목회자와 신자들의 복음에 대한 무지, 자의적인 텍스트 해석의 문제점, 빈번히 발견되는 심리적 투사와 혼돈의 현실에 대한 지적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정신적인 화상’을 입힐 만한 것이다. 책은 가히 ‘무지의 현상학’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그려내는 무지몽매한 현실을 하나씩 드러내 검토, 질타한다. 여기에는 신앙의 목적에 대한 몰이해, 기복주의적이고 성공주의적인 긍정일변 신앙의 기만성, 이러한 체질이 공고화, 사회화되면서 초래된 영적 권능의 상실과 같은 것이 대표적일 텐데, 물론 이러한 무지를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대형교회, 교계 원로의 발언과 퍼포먼스 등도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다. 당대의 지배세력과 불화했던 예언자들의 전통을 성실히 따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온갖 형태의 ‘권력’들에 대해서도 날을 세운다.

“나는 이 책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라 불리는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교회를 비판했다. 그 교회들을 이끌고 있는 목사들에 대한 신뢰를 가능한 만큼 기억에 남을 정도로 부정했다. 그 성도들을 향한 신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실히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들을 향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 단지 우연에 의해 획득된 정신의 고정화된 비늘, 무엇으로도 벗겨지지 않을 인식상의 우둔함과 미련함이 증상의 핵심이다. 나는 그 모세의 수건을 어떻게든 환기시키고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싶었다. 할 수만 있으면 그들을 대형교회의 예배당과 그들의 집회로부터 끌어내고 싶었다.” _9쪽

자기 부인의 신앙을 향하여
이처럼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현실이 ‘자기 부정’이라는 기독교적 구원의 방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책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설명하는 것은 욕망의 메커니즘,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이다. ‘속지 마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떠나십시오’ ‘자라나십시오’. 사력을 다해 던지는 이 광야의 요청과 물음을 통과하지 않고서, 한국 교회는, 우리 신앙의 모습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전에는 그런 욕망을 제대로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그 사실만이 괴로웠겠지만, 이제는 자신의 실존이 여전히 옛사람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때문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 책임이고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 자기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을 통해서 복음적 치유와 회복,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했던 동물성과 야수성과 잔인함과 비열함과 교활함과 경박함이 이제는 자기에게서 발견되는 겁니다. 그러니 말보다는 침묵을, 표현보다는 사색을, 행동보다는 존재를 선택하게 됩니다. 전에는 ‘Doing’이 최우선적 문제였지만 이제는 ‘Being’이 우선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201-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