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트립 첫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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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수인교회 작성일24-06-11 11:44 조회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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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
전날의 잠을 설칠것 같은 불안과는 다르게 십분만 더 십분만 더하면서 꽤 여유를 부리며 일어나 준비해두었던 짐과 간식 챙겨서 새벽바람을 가르고
양산으로 달려오는 길이 유달리도 설레였습니다. 드디어 기다려오던 비전트립 출발하는 날입니다.
4층 나눔홀에 올라가니 일찍 도착한 분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반겨주시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모님까지 계서 깜짝 선물 받은 것 같은 기쁨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약30여분 남짓 동안 오지않은 친구들은 없는지 챙겨보고 마니또 뽑기도 하며 시간은 휘리릭 흘러갔습니다.
이윽고 37명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전신욱담임 목사님 축복 기도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가니 ‘예수인교회’라고 LED전광판으로 안내되어지고있는
위풍당당한 45인승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제 정말 출발하는구나~ 심장이 바운스 대고 기대감이 물씬 차 올랐습니다.
1박2일 우리 예수인 식구들의 안전한 운행을 책임져 주실 기사님도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셔서 더욱 마음이 놓였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니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자리를 찾아 앉아 있고 쾌적한 실내도 좁긴 했지만 여유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맨 뒷자리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활발한 아이들의 차지가 되고 마니또 미션을 수행하는 긴장감 아닌 긴장감이 함께 하며
휴게소 몇번을 지나 드디어 서울에 입성하고 첫번째 목적지인 익선동에 도착하였습니다.
버스에서 마이크로 미션을 설명하면서 익선동 한옥거리는 일제시대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에 의해 개발된 한옥단지라는 사전 지식을
아이들에게 잠시 전달해 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한옥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초등 저학년 뿐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약한 네살 유아부터 학부모
그리고 육십이 훌쩍 넘으신 권사님, 안수집사님까지 그 구성원이 너무도 방대하다는 사실이 새삼 확 와닿았습니다.
다시 한번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가실 일들에 대한 믿음을 발휘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알맞는 방법으로 역사하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조별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그전에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합류하여 비전트립에 같이 하기로 계획하였고 그동안 저의 모든 비전 트립을 함께 해온
민규도 흔쾌히 동참하고자 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을 내준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총 38명이 된 우리 비전트립팀은 세개의 조로 나뉘어져 사전 조모임에서 의견 나누었던 익선동 골목 투어를 시작하였고
틈틈이 미션을 수행하고 사진을 찍으며 어색하기도 한 마음들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 교회에 다니고는 있었지만 예배만 같이 드릴뿐 별다른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없는 분들과 한조가 되어
더운날 낯선 곳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고 또 도는 상황은 만약 선택지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경험이지만
막상 우리들에게는 같이 흘린 땀방울과 같이 바라본 하늘, 같이 바라본 기와지붕들이 정말 특별한 기억으로 흐뭇하게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내 옆의 지체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더 챙겨봐 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비전트립은 큰 의미로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이웃 사랑이 어렵고 막연했는데 공동체의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조금의 관찰을 더 하고 발견을 하며
그 필요를 채워주려는 애씀이 사랑의 모습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사진을 찍을때도 하나가 되어 글자를 찾는 열정과 인싸포즈 사진찍기 미션을 위한
웃기지만 단합된 노력, 만원장보기에서도 조별로 가치있는 일에 대한 활발한 의견나눔을 가지는 우리 예수인 식구들을 보며
아직은 어찌보면 작은 씨앗들에 불과한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주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각각의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는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어지는 경복궁에서의 시간은 내부 깊숙이 들어갔던 익선동과는 달리 저 멀리 바깥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관람이 이루어졌습니다.
박종윤선생님과 학생들은 궐내로 들어가 부지런히 보고 돌아왔지만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으신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궐내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기념사진만 찍는 것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역시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왕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인가 봅니다.
그래도 하루동안 서민이 살던 주거공간과 한나라의 왕이 살던 주거공간을 둘다 보고난 소감이 감회가 남다른것 같았습니다.
한사람을 위한 저 넓은 땅과 많은 사람을 위한 저 땅은 그 가치를 단순히 비교할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커스 예배에 가기전 경희대 앞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두시간 정도 일찍 맑은샘광천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평소에 못해보던 경험을 했습니다. 예배실의 문이 열리기를 간절히 원하며 줄서서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백화점 오픈런이나 연예인 콘서트 같은것에서나 줄서기에 익숙하던 우리가 예배를 위해 줄을 서는 경험은 불편했지만 신선했습니다.
덥고 힘들었지만 필요한 순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터인가 편하게 드릴수 있게 된 예배, 내가 드리고 싶을 때, 내가 드리고 싶은만큼 소비하는 것 같이되어버린 예배가
그래도 예배라고 마음에 위안을 삼던 제 자신에 대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혹시나 그럴일이 없으시겠지만 오지 말라고 하셔도 내가 매달리면서 끝까지 쫒아가는 예배, 잡은 손 놓지않으시는
주님으로 인해 몇시간의 대기줄도 동행으로 바꾸어 주시는 은혜가 감지되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찬양 소리가 온 성전 가득 울려 퍼지고 그 목소리에 우리 아이들의 진심어린 노래 소리가 얹혀져
이날의 마커스 예배는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배가 얼마나 기쁘고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를 우리 아이들이 오래 오래 기억하고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많은 순간들 속에 혹여 넘어진다하더라도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고백하며 새힘 얻고 다시 일어서는 아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곡들이 다 좋았지만 특히 ‘믿음의 세대를 이어가고’ 하는 그 찬양은 정말 가사가 와 닿았습니다.
마치 그곳에 와있는 우리 예수인 식구들을 위해 부르는 축복송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대를 이어가는 믿음의 사명이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의 하나된 가치이며 이 다음세대가 자라나서 그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수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마커스에서의 뜨거운 기억을 뒤로 하고 숙소로 들어와서 방배정을 받고 난뒤 남녀로 모여 간단히 간식을 먹으며 하루를 돌아보고 짧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박은 조장님께서 각각의 사람들 한명한명에게 소감을 물으셨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공감도 가고 좋았던 감동이 더욱 커지는것 같았습니다.
둘째날은 양화진 일정이 있어 아침을 일찍 먹기로 했는데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아도 솔선수범해서 7층 주방으로 모여 아침준비를 도와 수월하게 진행이되었습니다.
눈치를 보거나 속상할 일 없이 편안하게 일정들이 흘러가고 협력해서 일들을 치뤄내니 사람들이 하고는 있지만
그속에서 전방위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비전트립에서 양화진에 가기로 결정되었을때 청소년부 반모임에서 아이들에게 양화진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자이언티, 택시드라이버..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주었더니 우리가 비전트립에서 무덤을 가는거냐고 실망하던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루라는 시간이 24시간으로 한정적이고 일년이 365일이라는 날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함부로 쓰기도 아깝고, 아무렇게나 소비해버리는 것은 더욱 안됩니다.
자신을 위해 계획하고 아끼고 절제하며 쓰는 것이 시간입니다.
그런데 남의 무덤을 보러 가는데 자신의 시간과 경비를 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동안 저에게 선교사님이라는 분들은 사실 넘사벽 같은 존재였습니다.
장로교의 아버지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펜젤러,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셨던 헐버트,
이화여대를 설립한 스크랜턴, 의료선교가문의 로제타홀, 결핵환자 퇴치를 위해 힘쓴 셔우드 홀 등
그럴만하게 태어나신 분들이 그럴만한 일을 한 위인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고 그분들의
사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것이 편했기 때문 입니다.
너무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지는 않았던 조선을 사랑한 선교사님들의 헌신은 꼭 저에게도 어떤 희생과 사역을 요구할 것만 같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크리스찬인 너는 뭐했냐는 질책과 그 비슷한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겠구나 생각하고
기념홀에 들어섰는데 암흑처럼 어두웠고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글귀에만 불빛이 비춰져있었습니다.
전시되어있는 로제타 홀선교사님이 쓴 일기에는 그녀의 힘들었던 심정이 고스란히 나타나있다고 합니다.
그럴만하지 않을때에도 또 견디기 힘들 때에도 부르심 받은 사명을 감당한, 나보다 먼저 살다가신 그녀의 생애의 흔적이 유리관 안에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할만해서 하는것이 아니라 해야해서 하는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감당하신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노력을, 그분들의 시간들을 나의 시간을 내어서 알고 이해하고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숙연하게 묘비마다 참배하며 선교사님 이름을 눈에 담는 것들을 보며 열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한번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양화진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세우신 연세대학교를 탐방해 보았습니다.
학생회관에 가서 학식도 먹어보고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이신 박종윤선생님을 통해 언더우드관을 포함한 아펜젤러관 및 연세대에 관한
선교학적 설명을 뜻깊게도 언더우드 동상 밑에서 들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원래는 인도에 선교를 가려고 계획했다가 차질이 생겨서 선교지를 조선으로 변경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 언더우드가 인도에 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아서 조선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더우드 만이 아니라 그 시기에 수많은 돕는 손길들과 상황들은 많은 희생과 아픔이 있었지만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없이 약한것이 인간이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며 나만을 생각하지않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내려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한강에서 보내기로 한 우리 예수인 식구들은 이름도 알 수 없는 한강 어딘가 쯤에 내려 흐르는 강물과 주위를
둘러싼 하늘과 빌딩숲을 들이마시듯 바라보았습니다.
첫째날보다 훨씬 편안해진 서로들에게 눈빛으로 때론 소소한 대화를 주고 받는 우리 식구들의 모습이 이 여행이 좀더 계속 되었으면 싶은
아쉬움까지로 커져갈때쯤 몇몇의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다시 양산으로 버스를 출발시켰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발견하게 하여주시고 누리게 하여주시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여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사 김소영 집사 비전트립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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